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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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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3:1-13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은 나라, 민족, 인종, 문화 빈부의 차별이 없이 모두 평등하게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맨 처음으로 하신 일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복을 주시는 일이었고, 또 아브람을 부르실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인생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꿈꾸셨던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관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선이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겠다는 욕망으로 경계선을 넘었다. 이는 우주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시발점이 된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숨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어디로 숨는가? 그런데 본문은 아담의 행방을 모르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담을 찾고 계신다.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이에 아담이 대답을 한다.

내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듣다”->‘깨닫다는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도, 그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b.“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내가 그래서 나 자신을 숨겼나이다.”라는 뜻인데 이는 벌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음을 말한다.

c.“하나님의 낯을 피하여”->“하나님 없는 세상으로라는 의미로 아담 스스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여 숨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d.“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거짓된 변명이다. 범죄하기 전에도 아담은 벗고 있었다. 그때는 부끄러움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e.“벗었다(에롬)”간교하다(아람)”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벌거벗었기 때문에 두려워던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그는 이미 간교해졌으며, 그래서 솔직히 잘못을 시인 할 수가 없어 책임을 회피, 전가하며 하나님 없는 곳으로 멀리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영향력이다. 죄는 우리에게 간교함을 유발한다. 그래서 핑계대고 전가하고 숨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간교해 질대로 간교해 져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대로 내가 나를 주장하며 사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고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 나선다. “아담, 어디에 있느냐?” 이 소리는 자녀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애끓는 소리요 피의 절규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심판을 위해 찾아 나선 것이 아니다. 용서해 주려고, 살 길을 열어 주려고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벗고 있는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이는 아담을 대신하여 다른 생명이 희생하여 죽었다는 얘기이고, 이것을 구약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7-8).

a.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찾아 나선 때는그 날 바람이 불 때이다. 정관사가 붙어 있으므로 특정한 그 날인데, 아담과 하와가 벗은 몸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들어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던 범죄한 바로 그 날, 바로 즉시이다.

b.“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쉼 없이 계속되는 의지적인 행동을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시는 것은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래서 뗄 수 없는 영원한 관계, 사랑의 관계이다. 역사는 집 나간 당신의 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 아들의 숨바꼭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단은 죄인이라고 이간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이미 용서했다.

15:3-4이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이미 깨끗하여 졌다. 십자가로 해결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 8:1-2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얼마나 장엄한 노래인가? 얼마나 환희와 감격의 노래인가?

이제 우리는 나와야 한다. 죄의식에서 나와야 한다. 불안과 두려움, 아픔과 고독, 눈물과 우울, 외로움, 시기, 질투, 분노의 자리에서 나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찾고 계신다. “내 아들아, 나와라. 괜찮아 용서했어. 나오기만 하면 돼이 음성이 안 들리시나?

탕자는 유산을 받아 아버지의 간섭 없이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집 나갔다. 아버지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결국 재산을 탕진했다.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와 함께 뒹굴며 산다. 견디다 못해 결심한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5:19). 다시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양심상 허락지 않았다. 양심으로 당연히 그렇다. 여전히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나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품꾼의 한 사람도 감지덕지이다. 그리고 품꾼의 신분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을 기다린다. 아들을 발견하고 달려간다.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 하는 말, 15:24이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에게 그는 여전히 아들이었다. 지금 털고 나오라. 아버지가 찾고 계신다. 이미 용서했다. 이미 해결했다. 숨을 수 없거니와 숨을수록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솔직한 사정을 다 아버지께 아뢰라. 아직도 두렵다면, 아직도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아직도 절망이고 걱정, 근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면, 아직 숨어있다는 증거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아버지께 가지고 나오라.

아담, 어디에 있느냐? 000야 어디에 있느냐?” 지금 이 음성이 들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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