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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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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        눅2:1-7

 

 

한국교회는 단기간에 기적적이고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 냈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요인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a.한국사람 특유의 종교심이다. 단군신화 자체가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통치 기반을 불교에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에 기반을 두었다. 여기에 샤마니즘이라는 민족저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우리민족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자연적으로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우리민족은 자연히 종교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b.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가 구한말이고, 그리고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게 된다. 그 시기는 어둠의 혼란과 절망의 시기였다. 이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부르며 희망의 메시지로 민족을 깨운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기독교이다.

c.6.25 이후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을 때, 그리고 보리 고개 시절을 거쳐 오면서 온 국민이 가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 칠 때 교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패배주의적 의식구조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적극적인 의식구조로 바꾸는 일에 앞장섰다.

d.그리고 오랜 시절 군사정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의 핵심역할을 교회가 수행했다.

e.여기에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한 열심히 가미되었다. 모이는 일, 헌금, 기도, 등등이 열심히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f.성령운동이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등에 치중하면서 사람들의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었다.

이런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오늘의 부흥을 이루었는데, 그런데 근자에 들어서 한국교회는 큰 위기에 봉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의 성장이 멈췄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봐야한다. 예수는 왕족이나 귀족의 가문에 오시지 않았고, 명망 있는 바리새인의 가문이나 제사장의 가문에서 오시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처녀의 몸에, 그것도 마구간, 말구유에, 목수의 아들로 오셨다. 그동안 우리는 말구간이 아닌 왕궁, 말구유가 아니라 비단구유에 오신 예수를 믿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서기관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8:19).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장면을 보고 예수님은 어마어마한 배경을 갖고 있는 분이며, 그래서 예수를 따르면 아마도 팔자를 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때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다. 8:20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오늘날 한국교회는 서기관 증후군에 빠져있다. 예수님은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메시야를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 말구유에 보내셨다. 왜 그러셨을까?

1)6“...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음이라예수는 마구간으로 버림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말은 당나귀이다.

당나귀->()donkey는 얼간이, 멍텅구리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는 당나귀같은 인생을 찾아 그곳으로 버림받아 가신 것이다.

이 후로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줄 곳 donkey와 같은 버림받은 인생을 찾아가는 삶을 사셨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 나병환자, 창기, 세리들을 찾아가셨고, 죽음 앞에서 오열하며 절망하는 자들을 찾아가셨고, 그리고 마침내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과 저주의 인생을 찾아 무덤에까지 내려가셨다. 이것을 막10:45은 이렇게 말씀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구간, 자기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한 첫 출발이다.

2)예수님이 처음 누우셨던 곳은 구유, 즉 말의 여물통이다. 그런데 이 동네의 이름이 베들레헴이다. 베들레헴 집과 떡의 합성어로서 (Beth, +Lehem, )=Bethlehem(빵집, 식당)은 떡 집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을 주러 오셨다.

그 떡은 먹고 죽는 썩을 양식이 아니라, 먹으면 죽지 않는 양식이었고,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였다. 그래서 그 떡의 이름을 생명의 떡, 참되 양식이라고 하고, 생수의 이름을 참된 음료라고 말한다. 6:54-57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3)예수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예수님께 와서 경배한 자들은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고, 별을 연구하는 동방의 박사들이었다. 박사들은 지식인이었고 부자였고 귀족이었고, 반면 목자는 천민신분이다.

성경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한 자들이 가장 천한 자들과 가장 귀족적인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이 땅 누구든 예수가 필요하지 않은 자들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계신 마구간에 찾아온 자들은 서로 자기들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랑거리를 나열하지도 않았다. 2:20이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그리고 박사들, 2:11이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여기에 높고 낮음, 잘나고 못남이 있는가? 여기에 기득권이 있는가? 없다. 오직 예배만 있다. 경배만 있다. 헌신만 있다. 오직 예수만 높인다.

1:10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통일->“여러 가지 것들을 한 가지 동일한 목적을 향해 모으다라는 뜻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인간은 타락했고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각기 제 길로 갔다. 53:6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 그래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한다. 배운 자는 못 배운 자를 무시하고, 유대인은 이방인을 배척한다. 그래서 역사는 미움과 다툼, 증오가 끊이지 아니하는 모순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13이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이 말씀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하나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인데, 어디 이방인과 유대인뿐이겠는가? 모든 인생,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말이다. 그렇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별개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열방에 나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상처 받고 소외된 자들을 끌어안고 저들과 함께 웃고 울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모두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다. 그러므로 사랑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가 이것이다. 17:11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이 민족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고 분열과 갈등으로 산산조각난 이 민족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다. 그럴 때 마침내 휴전전은 무너지고 남북도 하나 될 수 있다. 교회의 능력은 오직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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