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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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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들에게... 벧전2:11-12

 

 

성경은 인간을 여러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인생은 안개이다.” “인간은 질그릇이다.” “인간은 풀이고 꽃이다.” 등이다. 본문은 인생을 거류민, 나그네로 비유하고 있다.

*거류민(행인)->정착하여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자들.

*나그네->‘집을 떠나 사는 자

그러니까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잠시 동안 체류하는 존재인 것을 말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을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는 자들”(13:14)로 묘사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3:20)고 말하고 있다. 또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히11:9-10은 아브라함이 이삭, 야곱과 함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비록 장막을 치고 살았지만 견고한 성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볼 때에 낯설어 보일 수밖에 없다. 사는 모습이 자기들과는 전혀 다르다. 거짓되지도 않고 술 취하지도 않고 방탕하지도 않는다. 음란하지도 않고 우상 숭배하지도 않는다. 경건하게 산다. 의롭게 산다. 진실하게 산다. 하나님을 경외한다. 자기들과 전혀 이질적이다. 그래서 4:4이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비방하는 이유는 자기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들과 같이 악하지도 않고 음란하지도 않고 우상숭배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 참으로 바쁘게 산다. 바쁘게 산다는 것은 열심히 산다는 것과도 상통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쁘게 사는데 사는 방향, 사는 목적이 분명한가 말이다. 바쁘기는 한데, 방향과 목적이 분명치 않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다.

바울사도는 참으로 열심히 산 사람이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였으니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그가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 열심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했다고 하는 것이다. 3:14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사는 사람이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래서 시90:12은 말씀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자신의 날 수를 계수하며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보내면서 편지를 받는 수신인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지칭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11). 지나가는 사람이요 낯선 사람이다. 언제까지 한 곳에 머무는 자들이 아니다. 시민권은 따로 있고 잠시 와서 임시로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 현대인들이 왜 끝도 없이 방황하는 것인가? 이룰 만큼 이루었고, 그만하면 쉬어갈만도 한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디서 온 지를 안다. 어디로 가는지도 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지만,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 하늘나라가 우리의 본향이다. 세상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를 노래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임을 안다. 여기 이 땅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자이다.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본향,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 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한다. 육체의 정욕은 영혼을 거스른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육체의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는 내면에서 일어난다고까지 말했다. 선과 악,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의 가장 치열한 접전지는 우리 내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도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잠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울은 이 내면의 영적 전쟁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내 마음에는 두 가지의 법이 있다. 하나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다.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운다.”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인지 이렇게 탄식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본문에서 말하는 육체의 정욕을 다른 여러 성경은 죄악 된 욕구들, 세상적 욕망들, 무질서한 자연적 경향들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정리한다면 하나님 밖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구나 욕망들, 죄에 대한 강한 집착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를 갈5:17은 이렇게 말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육체의 소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을 한다. 19-21절이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그리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그래서 본문은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일을 제어하라.”라고 선언한다. 육체의 정욕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싸움을 필요로 한다. 제거해야 한다. 잡초와 같아서 매일 제거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올라온다. 그래서 매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가 있는가? 5:16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에 그렇게도 성령을 사모하며, 성령의 감동을 입기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의지나 도덕, 양심이나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성경은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약속하셨던 것이다(2:17).

2)나그네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은 칭찬을 받을 만한 선한 행동을 의미한다. 즉 외형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선한 삶의 모습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까지 칭찬을 받으라는 것이다.

5:13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그러면서 16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그냥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만 보이면 물고, 뜯고 잡아먹으려고 우는 사자처럼 주시하고 있다. 옳고 그름, 시시비비를 따지고 정죄하고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품는 것이다. 이해하고 섬기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부흥을 했는가에 대해 행2:47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두려운 것은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까봐 가 아니다. 스데반처럼 죽지 못하고 더 살고, 더 누리려고 발버둥치는 세속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이 더 두려운 것이다. 우리 주님은 다 버리고 세상에 오셨는데, 우리는 더 가지려고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내려가 십자가를 지려 하시는데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초막 셋을 짓는 꿈에 부풀어 있다.

나그네 인생, 잠시 후면 모든 짐을 다 풀어 놓고 떠날 것이다. 그런데 잠시 머물러 사는 이 세상이 나그네의 발길을 유혹한다. 17: 은 세상을 음녀(창기)에 비유하고 있다. 창기는 부정한 자이다. 유혹하는 자이다. 죄 짓게 하고 타락시키는 자이다. 이 음녀를 17:4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가장 호화스럽게, 가장 아름답게, 가장 매혹적으로 단장하고 우리를 유혹한다. 어떻게 유혹을 안 받는가?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어떻게 타락하지 않겠는가?

소돔과 고모라가 롯을 유혹할 때가 그랬다. 13:10이다.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땅의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13).

8:6은 말씀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래서 롬12:2은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우리는 거류민이요 나그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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