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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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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5:25-34 

                                                                 -네 이름이 무엇이니?-    

 


 

기독교 신앙의 안파와 오메가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믿음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성령의 역사, 예수의 피로 이 땅에 세워진 교회, 그리고 죄 사함과 부활과 영생에 관한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 고백 안에 각종 기적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모든 것들의 합리적인 설명이나 과학적인 논증을 말하지 않는다. 초 이성, 초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의 영역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 내는 것이다. 삶으로 구현되지 아니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삶이다. 실제로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열매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저들의 삶은 불법, 즉 믿음이 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적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삶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를 믿고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예수의 하시는 일을 나도 하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나도 가는, 즉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의 만남이요 관계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교적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지만 그러나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가 매우 혹독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15:8-9).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비록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무척이나 경외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즉 외식이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8:11). 그러나 저들의 삶에는 예수가 없었으니, 한 마디로 예수 없는 외식이었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권능을 행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했으니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만남이요 교제이다. 그를 닮고, 그를 따라 가는 것이다.

10:14-15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양과 목자와의 관계로 비유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목자와 양 사이에 형성되는 철저한 상호인식과 사랑의 관계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 요15:4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설명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이는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영적 사귐,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관계요 사귐이요 친밀감이다. 그 안에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기적도 있고 능력도 있고 복도 있다.

3:20에 이런 말씀이 있다.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주님이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계시다. 예수님 없이 자기들끼리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라오디기아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예수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능력 받고 병 고친다.

예수 없이 부자 되고, 예수 없이 기적이 나타나고, 심지어는 예수 없이 방언하고 예언하는 경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주의 이름을 이용하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그리고 많은 권능을 행하지만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인기가 올라가고 영웅도 되지만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는 예수가 없다. 그리고 예수 없는 불법적인 삶을 산다. 아니 저들에게 예수는 열려라 참깨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오류는 우리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함정이다.

본문은 12년 동안 혈루병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고침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혈루병은 여성 질환으로서 하혈이 계속되는 질병이다. 이 질병은 부정한 질병으로 취급되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격리대상이 되는 여성에게 부끄러운 질병으로 취급되었다. 12년 동안 조용히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는 사이 병은 더 중하여졌다. 이제는 돈도 떨어졌다. 절망이다. 그러던 중 위대한 치료자 예수에 관한 소문이다. 예수를 만나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런데 몸을 이끌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율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겠다고 결심한다.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깨끗이 고침을 받았음을 여인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한평생의 문제가 뿌리 채 뽑혔다. 이제 재빨리 군중들 틈을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의 소리가 들린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여기에서 여인의 입장과 예수님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a.여인의 입장-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병 고침을 받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 했으니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예수가 필요 없다.

b.예수님의 입장-예수님은 여인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조용히 가게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답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여인을 불러 세우셨을까?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이 말은 내 몸에 손을 댄 네 이름은 무엇이냐?”이다. 즉 예수님은 여인의 이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관계에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한다. 이때부터 누구와 누구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은 오직 병 고침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고 예수님은 그 이상의 관계 즉 만남, 사귐, 즉 교제, 즉 친밀감이 목적이었다.

여인아, 나는 너를 깊이 알기를 원해. 깊이 사귀기를 원해. 네 이름이 무엇이니? 이제부터 나와 진실하게 한 번 사귀어 보자구나.”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을 불러 세웠던 것이고, 통성명을 하자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여인과 예수님의 차이였고, 또 우리와 예수님의 차이이다.

나는 포두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관계, 즉 붙어 있어야 하는 친밀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다정하게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니? 나와 한 번 사귀어 보지 않겠니?” 이후로 예수님과 여인은 관계가 형성된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 지어다.”

a.예수님이 여인을 딸이라고 불러 주신다.-딸은 부녀관계의 관계의 회복이다.

b.“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이 말은 내가 너를 구원하는 메시아다란 뜻이다.

c.평안히 가라.->12년 동안 여인은 평안을 모르고 두려움과 근심, 한과 눈물을 머금고 살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제는 사라졌다. 예수님이 저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14:27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나의 평안, 곧 예수님 자신이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여인의 안에 계실 것이고 마음에 근심하지도 않을 것이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물으신다. “네 이름이 무엇이니? 나와 사귀어보지 않을래?” 어쩌면 이것은 우리와 깊은 사귐을 원하는 예수님의 애원일 수도 있다. “. 주님과 더 깊이 사귀기를 원해요. 더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해요.” 그래서 주님과 함께 가는 길, 함께 가는 인생, 이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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