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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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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문, 좁은 길         마7:13-14

 

 

예수를 믿는 것이 왜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인가?” 박해를 받으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충분이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우리 같이 편안히 예수를 믿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예수 믿기에 너무도 자유로운 환경이요, 그래서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매를 맞지도 않았고 쫓겨나지도 않았고, 또 감옥에 갇힌 적도 없고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리나라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1,000만 이라고 해도 3,000만 이상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를 믿지 않을까요?

우선 예수를 믿으려면 자기의 상식, 자기의 경험, 자기의 지식, 그리고 자기의 합리주의, 자기의 과학을 버려야 한다. 왜냐면 믿음의 영역은 이런 모든 배경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 이성, 초 과학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믿으려면 자기의 상식과 이성, 과학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천적으로 이성적, 합리적, 또 과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고데모-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듭난다는 말은 두 번 난다는 말인데,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인간은 누구나 신념(信念)을 가지고 있다. 이 뜻은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념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축적해 온 경험이나 문화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믿어온 종교일 수 있다. 이것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예수를 안 믿는다. 제사 때문에, 술 담배 때문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지내야하기 때문에 등등...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자기의 모든 배경들을 것들을 버림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면 신념이기 때문이요, 종교이기 때문이요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극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넓은 문->‘넓다라는 단어는 거칠 것이 없는 광활한 땅을 의미한다. 이 문은 이성의 문, 상식의 문, 합리주의의 문, 과학의 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로 가기를 원하며, 그래서 이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은 것이다.

결론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좁은 문이다. 이 문은 합리주의를 부인하는 문, 지식과 과학을 부인하는 문, 자기를 부인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왔다는 얘기이다. 저절로 믿어진다. 이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말한다. 2:8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요,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온 것은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10:9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예수님이 문이다. 양의 문이요 구원을 얻는 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문으로 들어갈 때 생명을 얻는다. 이 문이 좁은 문인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존심을 버리고 때로는 물질과 부모형제까지 버리고...

그런데 본문은 좁은 문을 말하면서 또한 좁은 길을 말하고 있다. 14절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좁은 길이 하나 보인다. 그 길을 좁고 협착한 길이다.

협착”->‘우겨 싸다.’ ‘환난을 받다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되는데 타인으로부터 고통 받는 삶을 의미한다. 믿음의 길은 비록 생명은 보장되어 있으나 그 과정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고난이 수반되며, 그래서 이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드로->“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고백을 하여 바이오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 전무후무한 칭찬까지 들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신다고 하자 그것만은 안 된다고 십자가의 길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면 누가 우편에 앉을까, 누가 좌편에 앉을까 하는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다. 무슨 얘기인가?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데 당신이 가는 길, 십자가의 길, 즉 좁은 길은 싫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광야 길, 좁은 길이었다. 저들이 좁은 길을 가면서 못가겠다고 아우성하고 죄를 짓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즉 좁은 길 낭떨어지에서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좁은 문로 들어왔으면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왔는데 넓은 길로 간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애당초 이런 믿음은 없다.

그동안 우리는 잘 못 믿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와 넓은 길을 가려 했다. 좁은 문으로 들어왔으면, 그 다음은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이 길은 때로는 가시밭길이요, 때로는 웅덩이요, 때로는 산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야 하는 길이다. 피와 눈물로 걸어가야 하는 고독한 길이요 고통의 길이다. 이 길은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길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길이다.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은 죄를 경계해야 한다. 죄의 결국은 사망임을 분명이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하면서도 죄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왜 죄는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했는지에 대하여 깊은 성찰이 없다.

11:24-25에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애굽 왕실의 향락, 이것은 분명 넓은 길이다. 그러나 모세는 죄악의 낙은 잠시일 뿐임을 알았다. 그래서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능욕을 받는 좁은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 좁은 길은 고난을 받고 능욕도 받는 길이다.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길이다.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하는 것, 전도하는 것, 각종 부서에서 봉사하는 것, 모두 좁은 길이다.

그래서 혼자는 못 가는 길이다. 주님과 함께, 손잡고 가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네 손을 꼭 잡고 가리라

넓은 길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물이 넉넉하여 애굽 땅과 같고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보이지만 결국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좁은 길은 비록 좁고 협착하지만, 그리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매우 적지만,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문이요, 생명의 길이다.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좁은 문, 예수님이 가셨던 좁은 길,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따라갔던 길이다. 이 길은 예배하며 가는 길이요 찬송하며 기도하며 가는 길이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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