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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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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사랑 눅15:11-24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단어가 지극히 추상적이다. 사랑은 수학도 과학도 아니고 또 물체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것이라고 명쾌하게 답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것도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이다. 이 아가페는 피조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께만 있는 하나님 고유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더욱 알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가페, 그러기에 어떤 문학적 표현,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아가페,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사랑은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데 아가페를 가장 근접하게 깨달은 수 있는 설명이 집나간 아들의 비유이다.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자기 몫의 유산을 밀기 달라고 요구한다. 13절은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가족관계를 미련 없이 다 끊어버리고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그는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은 먼 곳이 어디인지 장소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그가 먼 곳으로 가기를 원했던 것은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려는 것이었다. 허랑방탕이란 말은 구원에 합당하지 않은이란 뜻인데 아들로서 살아서는 안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창녀들과 함께 허랑방탕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살던 지방에 큰 흉년까지 들었다. 돈 떨어지고 친구 떠나가고 흉년까지 들었으니, 둘째 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15절이다.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더부살이 했다는 얘기이다. 그것도 돼지우리에서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16절이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지속적 상태)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그러니까 둘째 아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굶주렸는데 누구도 돕는 이가 없었다. 이때 비로소 아들은 생각한다. 17절이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죽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현실을 자각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차라리 종살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 집을 찾아 가기는 하지만 가봐야 100% 문전박대 당할 것이다. 이제 와서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 집에 돌아가는가? 용납이 안 된다.

그런데 본문의 아버지는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여전히 아들이었다. 집을 나갈 때나, 허랑방탕할 때에도 아들이었고, 지금도 아들이며 앞으로 영원히 아들일 것이다.

20“...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a.아버지는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본다. 아들이 집 나간 이후로 아버지는 한 시도 아들을 잊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본다.

b.측은히 여겼다.-내장이 일렁일 정도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c.달려갔다-아버지는 자신의 체면, 품위 따위는 상관없이 아들에게 달려간다.

d.목을 안고 입을 맞췄다.-몇 번이고 계속해서 입을 맞추는 표현으로 아버지는 얼굴을 비비며 몇 차례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e.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겼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하는 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4).

여기에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보고, 측은히 여겨, 달겨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그리고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먹고 즐기자즉 동사에서 동사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을 나타냄을 나타낸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어떻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받아주어서도 안 된다. 그럴지라도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 그리고 아니야. 여전히 너는 내 아들이야말씀하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는다. 무조건 달려간다. 무조건 안아 준다. 무조건 입 맞춘다. 그리고 말씀한다. “앞으로도 너는 영원히 내 아들이다.”

a.아들은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아버지 집을 나간 아들의 마지막 탄식은 죽겠다이다. ‘

b.“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결론은 나왔다.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c.돌아가면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 날의 죄를 추궁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무조건 달려와 안아 주신다.

본문은 또 하나의 아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맏아들이다.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맏아들은 기분이 언짢다. “아버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와 함께 탕진해버리고 돌아온 저 놈을 아들이라고 다시 받아주는가? 저런 놈을 위하여 잔치를 벌이는가?” 아버지가 말한다. “맏아들아, 저 아들은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네 동생이기도 해”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2).

그런데 맏아들은 동생을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30).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아들을 위하여아버지의 아들은 될 수 있어도 내 동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움과 증오만 남아 있다.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문을 이어 갔으며, 빛도 나지 않는 고달픈 농사일을 하면서 가정과 마을을 지킨 그야말로 모범 청년이다. 노름이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즐긴 적도 없다.

그러나 맏아들의 결정적인 약점은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도덕주의와 성실함은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다. 맘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공로에 대한 자랑, 도덕적인 자부심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둘째 아들이 저 세상 밖의 사람들이라면 맏아들은 곧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맏아들, 또 다시 아버지의 마음에 못을 박는 맏아들, 그런 면에서 맏아들은 집 나갔다 돌아온 둘째 아들과 다를 바 없는 탕자였던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은 아버지이다. 기다리는 아버지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리라는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데도 아버지는 매일 집 밖에 나와 기다린다. 이런 무모함이 어디에 있는가? 이게 아가페이다. 조건은 없고 오직 사랑만 있는 무조건 사랑이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을 인류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죽은 아들, 잃어버린 아들을 맞이하는 데 사랑 외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라. 아버지가 품에 안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풍성한 잔치를 열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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