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설교요약



복음

모바일 App 사용자에게는 실시간 전송!

                                                     복 음                                 롬1:15-17

 

 

기독교는 복음을 말하는 종교요, 성경은 복음을 말하는 책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한 일도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요, 또 제자들p게 부탁하신 일도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16:15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결국 복음 전파이다.

바울이 그렇게도 로마에 가기를 원했다. 당시 바울이 로마에 간다는 것은 십중팔구는 죽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다. 그 이유를 본문 1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결국 복음 때문이다.

기독교가 기독교인 것, 그리고 장렬하게 순교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복음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찢어 물과 피를 아낌없이 쏟아 대속제물이 되어주시고,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주셨다. 이 예수가 복음이다.

16절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애당초 유대인이나 헬라인, 누구든지 죄 용서 받고 구원받을 길은 없었다. 죄인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없이 죄인이요, 죄인이기 때문에 또 어쩔 수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5:12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것이 인류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바울도 이 사망 앞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7:24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사망의 몸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던 한 사람의 탄식이요 절규이지만, 그러나 인류의 절규요 역사의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복된 소식을 기다려 왔다. 죽음의 문제, 사망의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줄 영웅 말이다. 하여 힘센 영웅도 기다려 봤고 도덕군자도, 성인군자도 기다려 봤고 위대한 종교를 기다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일이었다.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여전히 역사는 깜깜했고 인류는 여전히 절망이었다. 그래서 욥은 자기의 신세를 이렇게 탄식했던 것이다.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3:7),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 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 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3:11-12).

이것이 어찌 욥만의 탄식이겠는가?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종노릇하며 죽음의 길, 지옥의 길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든 인생들의 탄식이요 역사의 탄식이 아니겠는가?

이런 때에 우리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란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며, 이 예수의 오심에 대하여 천사는 눅2:10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이 말씀을 이렇게 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라 내가 모든 죄인, 죽음을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에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복음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복음은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복음인 것은 예수가 인류의 숙원인 사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믿지를 않는다. 예수가 누구이기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예수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죽음을 이기신 분이요,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 복음이다. 11:25-26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예수님은 의인이기에 죄인을 살릴 수가 있는 것이고,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죽음에서 살릴 수가 있는 것이며,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 우리를 천국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복음이 되시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6). 복음에는 차별이 없고 그 넓이, 그 길이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은혜인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이것은 도덕적인 질문이다. 굳이 무엇을 하여야 한다면 계명을 100%완벽하게 지키는 일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우리의 심장에는 죄의 DNA가 흐르고 있고, 이 죄의 DNA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충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도둑질 하지 않았다. 간음하지도 않았다. 살인하지도 않았다.” 그런 자에게 성경을 말씀한다. 속으로 음욕을 품은 것도 간음이요 속으로 욕심을 품은 것도 도둑질이라고 말이다. 교만할 것 없다. 의로운 척 할 것도 없고 도덕군자 노릇도 할 것 없다. 알고 보면 다 죄인이다. 거기서 거기이다. 위선을 떨고 있을 뿐이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 죄를 안 지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복음에 무엇이 있기에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가?” 복음 에는 용서의 은혜가 있다.

요일1:9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9:14이다.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것을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 보혈의 공로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는 이미 씻겨 졌다. 문제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요, 그 구속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주 앞에 나와 나는 죄인이다. 구원하소서. 하소서.” 한 마디만 하면 주홍같이 붉은 죄, 진홍같이 붉은 죄, 양털처럼, 흰 눈처럼 깨끗이 씻김 받을 줄로 믿는다. 이것을 용서의 은혜라고 말한다. 그렇다. 복음에는 용서의 은혜가 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돌로 쳐 죽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율법이다. 율법에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으니 죽이는 것은 합법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는 돌로 쳐라. 여인이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율법은 정죄하는 법이다. 그러나 복음은 용서하는 법이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한다.

어떤 죄도 괜찮다. 하나님 앞에는 큰 죄, 작은 죄 없다. 큰 바위덩어리나 모래알이나 물에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는다. 구원을 받는다. 헬라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누구든지 말이다. 큰 죄든지 작은 죄든지 어떤 죄든지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예수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여기에서 수고와 무거운 짐은 죄를 말하는 것이다.

용서 받지 못할 죄 없고 구원 받지 못할 죄인 없다. 누구든지 예수께 오라. 십자가의 예수 그의 흘리신 피를 바라보라.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는다. 그 피를 머리에서부터 흠뻑 뒤집어써라. “그러면 뭐하는가? 또 넘어지고 또 죄를 짓는데...” 괜찮다. 그때마다 예수님 바라보면 된다. 억만 번이라도 용서하신다. 다른 데 가지 말라. 예수에게 나오라. 이것이 복음이다.

 

 


목록으로
오늘 0 / 전체 214
no. 제목 작성자 작성일
114

빛나는 순금등대      

평촌이레교회2018년 9월 18일
113

 영들을 분별하라

평촌이레교회2018년 9월 13일
11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평촌이레교회2018년 9월 7일
11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평촌이레교회2018년 8월 28일
110

 나그네들에게...

평촌이레교회2018년 8월 27일
109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은?

평촌이레교회2018년 8월 7일
108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평촌이레교회2018년 8월 7일
107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니?-

평촌이레교회2018년 7월 24일
106

  하나님을 알아가는 마음 

평촌이레교회2018년 7월 24일
105

 세상과 벗하지 말라

평촌이레교회2018년 7월 11일
104

고난 속에서 부르는 찬송 

평촌이레교회2018년 7월 11일
103

여호와여 말씀하소서

평촌이레교회2018년 6월 27일
102

거저 받은 은혜 

평촌이레교회2018년 6월 21일
101

당신의 뱃머리는...?        

평촌이레교회2018년 6월 3일
100

당신에게 무덤이 있는가?

평촌이레교회2018년 5월 28일
99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     

평촌이레교회2018년 5월 18일
98

예수를 주목하라.

평촌이레교회2018년 5월 11일
97

두 가지 악

평촌이레교회2018년 4월 24일
96

좁은 문, 좁은 길

평촌이레교회2018년 4월 19일
95

 부활, 역사의 혁명 

평촌이레교회2018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