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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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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으라. 20:2-23

 

 

제자들은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쳤다. 고향, 가족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을 때에 그러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고, 꿈꾸던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1:16)고 했고 베드로도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라고 했다.

얼마나 멋있는 제자들인가? 그 용기, 그 의리, 그 자신감, 생각만 해도 믿음직한 제자들이다. 정말 멋지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예수께서 막상 십자가를 지셨을 때 저들이 과연 장담하던 바대로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가 말이다. 아니다. 다 도망갔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동료들이 말을 했을 때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베드로도 일개 게집아이 앞에서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결심했지만 결심이 무너지고 약속 했지만 약속을 파기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인간이이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호언장담했던 제자들은 완전히 겁을 먹고 숨어 버렸다. 본문 19절은 당시 제자들의 상태를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단수 문이 아니라 복수인 문들이라는 말을 주목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얼마나 두려웠던지 집에 있는 모든 문들은 다 닫아 버렸다는 얘기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완전히 배신을 당한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부활하면 너희들 두고 봐라.” 한 번 손봐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 숨어 있는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인데 내용을 구분하면 크게 세 마디이다.

a.21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b.21“...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c.22성령을 받으라.”

그런데 세 마디의 말씀 가운데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 없었다면 과연 예수님의 말씀이 실효성이 있을까?”하는 점이다.

a.“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평강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제자들은 지금 평안을 원하지 않아서 이렇게 숨어 떨고 있는 것인가?

살아온 세월 한 번 돌아보라. “내 생애, 평안했던 시절이 과연 있었는가?” 질병과 가난, 전쟁,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부터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생을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평안은 성령 안에만 있다. 14:17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말씀하신 것은 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평강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b.“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그런데 그냥 맨 손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영혼을 구원할 능력과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세와 그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이 행1:8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여기에서 오직이라는 단어를 주목한다.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는 길은 오직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성령은 제자를 세우는 능력이다.

모세는 살인자로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미디안에서의 모세는 지난 궁중에서의 귀족도 왕족도 아니다. 혈기 펄펄한 청년의 시기도 아니다. 살인자로 도망 나와 숨어서 장인의 양치기로 여생을 보내는 80세 노인일 뿐이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이렇게 부른다. “모세,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의 신을 벗어라. 너는 이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라.” 불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실패자, 낙오자 모세를 다시 거룩하게 하시고, 다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지금 제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세가 실패자로 광야로 도망갔던 것이나,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자로 골방에 숨어들어간 것이나 다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세를 불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 그리고 마침내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어떻게 임했는가? 2:3이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한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 이제 더 이상 모세는 실패자도 아니고 도망자도 아니다. 절망도 두려도 없어졌다. 이제 어엿한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 들고 바로에게 갔고 결국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성공 했다. 그는 홍해를 갈랐고 반석을 쪼갰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오합지졸의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목전까지 나아갔다. 그는 불의 종이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고 도망가 숨죽이고 있던 제자들, 저들은 도망자였다. 실패자였다.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저들에게 충만히 임하셨다. 그랬더니 이제는 도망 다니던 엊그제의 겁쟁이 제자들이 아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린다. 공회에 잡혀가서도 하는 말이 당신들이 잡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 예수는 부활하셨다. 당신들도 예수 잡아 죽인 죄를 각각 회개하고 우리들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다시 위협하고 협박을 한다. 그때 또 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우리는 보고 들은 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노라.”

모세나, 제자들이나 어떻게 이렇게 180도 달라진 것인가? 불로 임하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맹렬한 불로 임하신 그 영광, 그 능력, 그 은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부활하시어서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은 비겁하게 부인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으셨다. 오직 하시는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였다. 왜 그러셨을까요? 인간을 아셨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 큰 소리 치지만 결심한 바대로 살지 못하는 존재, 수시로 변하고, 수시로 배반하는 허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했지만 또 넘어질 것이고, 지금 결심했지만 또 배반할 것이다. 사람의 결심이 뭐가 그리 대단하며, 지금 완전하다 하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내일 또 넘어질 것이며 내일 또 실패할 것이며 내일 또 배반할 것인데 말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패역한 세상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그리하여 먹느냐 먹히느냐 살벌한 영적 전쟁의 현장이다. 이런 세상에 평안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가 있는가? 신학으로 되는가? 윤리나 도덕으로 되는 것이며, 총칼이나 촛불로 뒤집어 버리면 되는 것인가?

모세가 혈기와 민족애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제자들도 마음만 앞서고 의욕만 앞섰지 결국 실패했다. 결국 저들이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서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워질 수 있었다.

5:18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짤막한 말씀 안에 두 대립적인 요소가 공존해 있다.

a.술 취함과 방탕함 / b.성령의 충만함이다.

술 취함과 방탕함은 세상의 본질을 요약한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니까 술 취함과 방탕함의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의 새 사람을 입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큰 전환기에 섰다.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 그러나 전반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예수 믿을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 반기독교 정서의 확장으로 인해서 젊은이들이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가 분명하게 방향을 설정하고 그 길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 교회는 성령 충만에 승부를 걸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더 부흥 할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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