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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따라오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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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따라오려거든 마16:21-28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생활을 포기하고 공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날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 제자로 부름을 받은 후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이 일을 위하여 저들은 배, 그물, 고향, 부모친척을 버렸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하여 먼저 결행해야 했던 것은 먼저 버리는 것이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말씀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a.자신의 의지와 뜻을 부정하고 단호히 물리치는 적극적인 행동

b.이전에 주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행위를 함축하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외형적으로 저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각자 저마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때와는 또 다른 야망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면 우편에 앉고 나는 좌편에 앉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애당초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십자가였다. 오직 십자가가 목표였고, 십자가가 비전이었고, 십자가가 길이었다. 왜냐면 십자가만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아버지의 유일한 뜻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의 반응이 이것이었다.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a.“항변하여”->“베드로가 예수님을 나무라고 꾸짖었다는 뜻이다.

b.“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만은 막아내겠다.”고 하는 베드로의 강력한 저항이 담긴 표현이다.

이때 우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은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초지일관 이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은 자신을 부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14:26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우선순위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리스도요, 따라서 제자는 그리스도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는 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4:34에서 예수님은 말씀한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궁극적 목적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유대인의 왕이 되는 유혹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로 가셨던 것이다.

바울도 갈2:20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바울은 다 버렸다. 다 부인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대신 채웠다. 부인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집착에 빠진 불의한 삯꾼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 안에서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그 안에 그리스도로 채울 결단이 서 있는 사람, 그래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은 다 자기를 부인한 자들이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 모두가 주를 부인해도 자기는 절대로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는 단호히 십자가를 거부했다. 십자가는 추상이 아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체이다.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자기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한 없이 어리석게 보여도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자랑이다. 왜냐면 십자가는 살리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면 자랑스럽게 자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다. 멸시를 당할 수 있다. 큰 손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것은 죽는 길이다. 이 죽음의 길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미끼가 떡 만들어 먹어라. 천하만국을 주겠다.”였다. 알고 보면 십자가 없는 떡, 십자가 없는 천하만국의 영광이었다. 엄청난 함정이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함정에 빠졌다. 아니 우리가 이 함정에 빠졌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고 죄인들을 살리는 것이다. 결국 사랑, 희생, 섬김, 포기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십자가 정신에 입각했을 때 힘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문제는 우리가 나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없는 것이다. 아직도 체면이 중요하고, 기득권이 중요하고, 아직도 부귀영화가 더 소중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보고 양보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고, 오직 만사형통, 복을 받을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신다. 만약에 십자가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거창한 신앙고백을 한다 해도 그는 사람의 일을 생각할 뿐,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 자이다. 십자가가 없는 일은 다 사람의 일이다. 죽은 믿음이다.

5:24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정욕, 탐심과 함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육체의 죄악 된 모든 내적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취약점 하나를 꼽으라면 도무지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예수를 이용해서 욕망의 욕구를 채우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우편에 앉고 좌편에 앉기 위하여 서로 아귀다툼을 벌였던 제자들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완전 기복주의, 완전 세속주의이다.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는 기독교의 타락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 어떻게 해야 빛이 되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소금이 되는 것인가? 내가 태워지고 내가 녹아지는 것이다. 태워지지 아니하면 빛을 낼 수가 없고, 녹아지지 아니하면 맛을 낼 수가 없다. 이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모셔 두는 것이 아니고 지는 것이다.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감당하는 것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25절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요, 십자가의 은혜이다. 십자가는 결국 사는 길이고, 결국 흥하는 길이고, 거기에 복이 있고 은혜가 있고 거기에 기적이 있다. 거기에 자손만대 잘 되는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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