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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들어 밭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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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들어 밭을 보라. 4:34-38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수가성이라는 곳의 한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려는 것이었다. 이 여인은 지난 날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어 살았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편하고 살고 있지만 그도 사실은 같이 살고 있기는 해도 남편이 아니다. 결론으로 이 여인은 정숙하지 못한 여인이다. 유대사회에서 정숙하지 못한 여인은 율법의 정죄를 받아 돌에 맞아 죽이기까지 했다.

예수님과 여인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이 만남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으니 역사적인 만남, 역사적인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평생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 가면서 외친다. “와 보라.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

물을 길러 나왔는데, 그런데 물동이를 버려두었다는 것은 물을 포기한 것이다. 물은 육체의 생명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삶의 모든 근원은 물이다. 그런데 여인은 물을 포기한 것은 예수님이 물보다 귀한 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8절을 보니까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 이러라.” 먹을 것을 구하러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 사이에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는 끝을 맺었고, 그때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해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여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27절이다.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그리고 하는 말이 31절이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그러니까 제자들은 먹는 것 외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먹는 것, 그래서 랍비여 잡수소서.”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우리 말고 누가 먹을 것을 갖다 드렸단 말인가? 예수님이 또 말씀하신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어서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 하지만,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밭을 한 번 둘러 봐라. 곡식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지 않느냐?”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다. 제자들의 관심은 먹을 것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한 영혼에게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깨끗지 못한 여인, 그래서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는 상처받은 여인이다. 런 여인 하나를 만나기 위하여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들어오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영혼을 소중히 여기지만 한 영혼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많은 대중들 앞에서 말씀을 증거 하시고 기적을 행하고, 한 번에 많은 영혼을 상대하셨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든다면 디베랴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먹이실 때를 보면 장정만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고, 4:25을 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한꺼번에 수많은 무리를 상대하셨다.

그런가 하면 많은 대중들 틈에서 유독 나무 위의 삭개오를 바라보셨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경 바디메오의 외침을 들어주셨다. 우리가 큰 것, 많은 것,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동안 소소한 한 영혼을 소홀히 여길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 아이들은 수에도 치지 않았을 정도로 무시당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꾸짖는다. 어린 아이는 봉사도 못하고, 헌금도 못하고, 오히려 모임을 훼방할 것이다. 별로 쓸모가 없다. 그래서 제자들은 꾸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한다. 18:16이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자는 없다. 10:11-12이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본문의 여인에게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여인이 예수님께 묻는다. 그는 예배에 관심이 있었고 또 메시아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다. 이렇게 부정하다 하는 여인도 그의 중심에는 메시야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는 메시야에 대한 갈망하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메시야를 통해서만이 저들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구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갈망, 부르짖는 영혼의 외침을 들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제자들은 오직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이 한 여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100마리의 양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목자는 99마리를 버려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마리를 찾아 나섰다가 99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할 것이고, 또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가 목자가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순히 한 마리의 문제가 아니다. 한 마리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래도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는 사실이다.

음행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거든 돌로 쳐라.” “나도 너희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범죄 하지 말라.” 예수님의 관심은 어떤 죄인이라 해도 돌로 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데 있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면서 외친다. “와 보라.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이제부터 여인의 양식은 이 우물가에서 깃는 물이 아니다. 육체의 양식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였다.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 하는 일이었다. 즉 양식이 바뀌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 귀신들린 자를 만나셨다. 알고 보니 군대귀신이 들어갔다. 예수님이 그를 저주하여 귀신이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가 하면 돼지 떼(2000마리)에게 들어갔다. 그랬더니 돼지가 물속으로 들어가 몰사를 당했다. 그런데 오히려 물질적 손해를 입혔다고 예수님을 동네에서 떠나도록 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중요했던 것이고 사람들은 사람보다는 돼지 2,000마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 35절이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사람들은 밭에 심겨진 곡식 추수할 때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저들은 돈, 육체의 즐거움을 바라보고 살지만 우리 예수님이 바라보신 것은 영적 추수이다. 추수할 영혼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곳 추수해서 거둬들여야 한다. 우리 주님에게는 이것이 양식이었다.

제자가 무엇인가? 스승과 같은 생각을 같은 생각, 같은 비젼,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은 길로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한 끼의 식사보다 이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알려 주고, 예루살렘에 아니라 이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되며, 상처 받은 이 여인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예수님에게는 먹을 양식이었던 것이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지구촌에 널려 있는 추수할 영혼을 바라보라고 말씀한다. 저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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