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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자손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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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자손 예수여 눅18:35-43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요 성경은 기적의 책이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 안에는 온통 기적으로 충만한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신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시지만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고(1:22), 말씀 한 마디로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 능력자이셨고, 오병이어로 장정만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고, 죽은 자를 살렸고, 죄 사함의 권세도 갖고 있으셨다(2:10).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다.

하여 유대인들은 예수를 주목하기 시작 했다. 인기는 올라가고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을 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요6:26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러므로 마12:39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의 아주 중요한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 안에 기적은 충만하지만, 기적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성자 하나님이시기는 하지만 기적을 위해 오신 분은 아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도 뿌리치셨던 것이다. 오직 예수님이 보여주시기를 원했던 표적은 요나의 표적, 즉 십자가의 표적이요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보혈로 인생들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일이었다.

본문은 한 맹인이 예수님께 나와 고침을 받는 기적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의 배경은 여리고이다. 35절이 이를 밝히고 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그런데 주목할 것은 바디메오가 어느 날 우연찮게 거리에 나가 구걸하다가 운 좋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걸하다.”는 동사는 미완료 현재형으로 반복하여 끈질기게 요구하는 행동을 말한다. 그러니까 맹인은 상당히, 그리고 꾸준히 성실한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맹인이었고 거지였다. 이 정도면 절망이다. 산다는 것에 무슨 의미를 두겠는가?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디메오는 하루도 빠짐없이 여리고의 성문가에 앉아 비록 구걸이지만 자기가 할 수 이는 일을 성실히 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니까 맹인이 기적을 경험하기 전에 그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13:4은 말씀한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기적을 구하기 전에 먼저 성실하라.” 성실한 자의 곁으로 예수님은 지나가신다. 기적은 그 다음이다.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성실이 중요하다. 좋은 성적을 얻는 것보다 좋은 성적을 얻는 성실이 중요하다.

이것은 신앙 안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적만 원하는 신앙은 잘못된 것이다. 과정만 바르면 기적은 옆에 있다. 바디메오의 곁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셨던 것처럼 말이다.

누가 맹인에게 말해준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오.” 저들은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들이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의미를 분석해 본다.

당시 나사렛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촌이다. 그러니까 군중들이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것은 결코 메시야가 될 수 없는 고작 촌뜨기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당신이 기적을 행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메시야는 아니야.”라는 선언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자마자 맹인 바디메오가 외친다. 39절이다.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여기에서 소리 지르다라는 말은 많은 예수를 만난 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예수의 선지자적 권위를 선포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소경의 외침은 단순히 치료 받기 위한 의례적인 발언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공개적인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말 안에는 자신의 보지 못하는 눈을 보게 해 달라는 강렬한 요청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신들은 예수를 고작 나사렛에 배경을 둔 촌뜨기로 알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저 예수가 고작 나사렛의 촌뜨기 예수가 아니라 다윗의 자손 예수로 믿는다.”는 공개적 신앙고백이다.

그러면 그가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고백 한 것이 왜 중요한가?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임은 구약의 예언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이 예언의 성취를 마1:1의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 1:10-11이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아무도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하고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다윗의 자손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인정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고 잡아 죽였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여리고를 들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님을 고작 나사렛 예수로 무시하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주변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주님에 관하여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이용하여 출세할 생각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제자들까지 말이다. 그때에 오직 소경 거지 한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시고 성경에서 예언된 바로 그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바디메오는 비록 육안으로는 보지는 못하지만 영으로 이미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보았던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사실 또 하나를 깨닫게 된다. 기적 이전에 신앙고백이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다.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나의 구주이시다.” 이 신앙고백이다. 눈을 떠도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죄인이요 여전히 심판이지만 비록 눈을 멀었어도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다면 그는 죄 용서 받은 자요, 구원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이이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말린다. 꾸짖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당신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다윗의 자손이다. 메시야이다. 성자 하나님이시다. 나는 믿는다.” 결코 잠잠할 수 없는 감동의 신앙고백이다.

이 맹인의 신앙고백에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마 예수님은 깜짝 놀라셨을 것이다. 사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다윗의 자손 예수, 그렇게도 인정받고 싶었던 다윗의 자손 예수, 드디어 당신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한다. “그를 내게 데리고 오라.” 우리가 주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신앙고백은 예수, 당신은 다윗의 자손이다. 나의 구주이다.

나를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요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이다 이 믿음만 있으면 우리 주님이 가던 길을 멈추신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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