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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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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버지의 뜻        요6:37-40

 

 

종교다원주의, 종교보편주의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교리는 가는 길만 다르고 주장하는 강조점만 다를 뿐이지 추구하는 결론은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교는 보편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종교학적 차원에서 하는 말이지 우리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전혀 수용할 수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말 그대로 종교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보편적 종교의 차원에서 보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의 눈에는 배타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공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못 오해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쇼킹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한다. 6:27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33절과 35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종교의 사전적인 정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그러니까 종교는 인간의 먹고사는 문제, 정신적인 고뇌를 해결해 주며, 또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문화체계라고 설명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정신건강에 상당히 유익을 주는 문화적 도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도 과연 문화체계의 범주 안에 넣어도 괜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다. 배고픈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배부르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면 떡을 만들어 줘 봐야 또 계속 배가 고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먹으면 결코 주리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는 떡을 말씀하고 계시니, 이 떡은 생명의 떡이요, 이 떡은 바로 당신의 육체라고 말씀을 한다. 50절이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7절이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문화가 아니다. 그가 33년 공생애를 사시면서 기적과 능력을 행하신 것도 문화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고, 부활하신 것도 문화가 아니다. 이것은 실제 역사이다. 문화는 문화일 뿐 생명이 없다. 능력이나 기적도 있을 리 없다. 죄 사함, 구원,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우리는 문화체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도 산 믿음인 것이며, 이 산 믿음으로 오늘도 우리는 구원을 받고 능력을 받고, 또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문화체계도 아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37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그리고 38절이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한 남자와 여자가 결합을 해서 태어난 분이 아니라, 특별히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시다. 그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자 하나님이시다. 하늘보좌에 계셔야 마땅한 분이시다.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 하등의 이유가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오실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속사정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39절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절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다. 누구든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아버지께서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생하게 될 것이다.

예수는 자의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다. 예수가 개인의 자격으로 오셨다면 그는 한낱 유대인의 영웅, 문화체계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유대인의 꿈을 실현해 주는 분도 아니고 세상의 영웅도 아니며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권한은 단순히 그의 권한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이며 심판하는 권세와 구원하는 권세도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절대자요,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가르쳐 주는 종교 선생도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오셔서 신앙과 불신앙,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의 말씀은 모두 아버지의 말씀이며(8:28), 그의 구원도 아버지의 구원이다. 그래서 37절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사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고자 했을 때 그 길을 막았다. 왜냐면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피와 살을 영생하는 양식으로 나누어 줌으로 이를 먹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길만은 막아보려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했던 것이며, 또 수제자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협박했던 것이며, 또 수많은 군중들을 동원해서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요. 우리가 당신을 왕으로 극진히 모실 테니 십자가의 길로 가지 말고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오라고 회유했던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저들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영웅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뜻은 이룰 수가 없었으니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다.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로 가셨다. 그래서 지금도 아들을 보고 믿는 모든 백성은, 그들이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자유인이건 종이건, 남자건 여자건, 한국 사람이건, 이란 사람이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역사는 2,000년 역사 가운데 지속되어 왔으며,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주님 오실 역사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계속 될 것이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훼방을 받기도 할 것이고 거친 저항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게 될지 모르고 갇히게 될지 모르고 죽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음의 역사는 좌절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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