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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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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고전1:18-25


유대민족에게는 자기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상이 있었다. 그것은 막강한 능력으로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재건할 하는 메시야였다. 저들은 예수가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만한 인품, 그만한 인기, 그만한 능력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예수를 기대했고 예수를 따랐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겉옷을 벗어 깔고 호산나, 즉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환영을 하였다. 그런데 정작 예수에게서는 혁명가의 결기(決起)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예수님은 저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니, 이스라엘의 독립이니 하는 일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에 유대인들은 완전히 실망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게 품었던 희망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돌변했고, 성난 폭도로 변했다. 그리고 외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마27:25). 
저 유대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원하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뜻이 하나 됨이요, 생각이 하나 됨이요, 목적이 하나 됨이요, 길이 하나 됨이다. 그 하나 됨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십자가 없는 메시아를 원했다. 결론으로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다. 십자가가 본질이고, 십자가가 핵심이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든 예수를 설명할 수 없고 기독교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십자가가 무엇인가? 본문 18절은 말씀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에서 “십자가의 도”라는 말은 “그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복음은 말의 지혜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17절). 여기에서 말의 지혜는 말의 명석함, 철학적 논증을 말한다. 복음의 능력보다 사람의 철학, 말재간이 앞설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복음이 능력인 것은 십자가로 입증이 되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심과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 진리를 말씀하는 증표이다.
본문 22-23절은 말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람의 지혜나 총명이 복음을 앞설 수는 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철학이나 지혜를 내세우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다 배설물로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생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이요, 그래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아니라고 할 자가 없다.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지만 그것마저도 위선이요 오염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자신의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윗을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원천적인 죄인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위선이었고 가면이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죽어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없는 인생, 이것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생의 운명이요 숙명이다. 그래서 롬5:12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섬기고, 또 그를 경배하고 증거하며 오늘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위대함은 예수님의 삶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의 죽음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 23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도덕적인 예수, 윤리적인 예수, 또 정의로운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원문을 보면 십자가 앞에 정관사가 있다. “그 십자가의 도”이다. 우리의 구원이 되는 십자가는 오직 유일하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뿐이라는 뜻이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십자가를 지신다고 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 길로 가셔야만 했던 불가피했던 사정은 십자가로 통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벧전2:24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기독교에만 어떤 죄도 해결 받는 죄 사함의 도가 있으니, 곧 십자가의 도이다. 이 십자가의 도는 절묘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죄로 인해서 참혹한 저주의 인생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으니, 절묘한 하나님의 지혜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의 죽음이 대속적인 죽음이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십자가 앞에 나와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고백하는 자마다 죄 용서 받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자격을 얻는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전1:18). 세상에서는 어떤 죄인가에 따라서 형량이 결정 되지만, 그러나 십자가는 구별이 없다. 어떤 죄든지 상관이 없다. 왜냐면 어떤 죄든지 우리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도가 되는 것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다. 그래서 절망이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만큼은 절망이 아닌 소망이다. 이유는 부활을 전제로 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오직 부활을 전제로 한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밖에 없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그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래서 십자가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소망이 된다. 
고난주간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다.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총명 있는 자의 총명을 폐하는 구원의 도가 바로 십자가의 도이다.(19절). 그래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22-24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한 진면목은 십자가를 통해서 입증이 되었다.(25절).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붙든다. 십자가를 자랑한다. 십자가를 따라간다.

*십자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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